2006년 10월 09일
전주 천변가 빨래가 바삭하게 말라가네요

쨍한 가을 햇빛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삭하게 말라가는
형형 색색의 빨래가 정겹습니다.
# by | 2006/10/09 23:43 | 순간의 나이쓰, 고구마 사진 | 트랙백 | 덧글(1)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삭하게 말라가는
형형 색색의 빨래가 정겹습니다.
# by | 2006/10/09 23:43 | 순간의 나이쓰, 고구마 사진 | 트랙백 | 덧글(1)

그런데 어느 날, 그 누군가가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당신에게 신이 내렸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당신이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무당으로 살면 모든 나쁜 일들이 사라질 거라고 얘기한다면,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나도 이런 얘길 하긴 싫지만 이게 진실이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미신이나 귀신 따위는 믿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28살의 젊은이라면?
명절답게 며칠 동안 온종일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낸 후,
혼자 갖는 시간이 그리워 오랜만에 혼자 극장을 찾았다.
고맙게도 꽤 오래전에 개봉했던 <사이에서>가 아직 하고 있어서 기분 좋게 표를 끊었다.
극장 끝자리에 혼자 앉아, 청승맞게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자신이 원치않는 삶을 어쩔 수 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살아야할
'무당' 이해경의 심정이 절절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신' 내린 사람이 그러하듯 형형하고 귀기어린 눈빛을 지낸 대무(大巫) 이해경은,
신이 내려 어려움을 당하는 28살 '인희'를 보기만 하면 자꾸만 눈물을 쏟아낸다.
혼령이 무섭고 무당으로 사는 것이 너무 싫어서 자꾸만 거부하는 인희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앞으로 살아가며 수없이 느낄 그 슬픔을 무섭도록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억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터럭 한올만큼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본성을 거스르는,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해서 슬프고 서러운 무당의 삶을 보고있자니
문득 또 다른 한편에 서 있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가 떠올랐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동구의 엄마는 말한다.
"그래. 이젠 내가 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께. 그런데 너 정말 어떡하니? 너무 힘들텐데..."

내면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이 '안된다 안된다' 해도 진정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용기를 요구한다.
수많은 동구들이 그랬을 것이고, 수많은 페미니스들과 흑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28살 인희는 내림굿까지 받고 몇 달 간 무당수업을 받다 결국 사회로 돌아갔다는
간단한 자막이 다큐멘터리 끝에 나왔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지, 이건 선택의 문제 중에서도 '죽은 자의 세계'가
개입되는 문제라서 제일 난해한데, 내 심정 같아서는 어떻게 해서든
원치 않는 삶이라면 '신내림'을 거부해서라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이 진정 원해서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심정이다.
# by | 2006/10/08 20:52 | 생활人의 영화 보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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